DX와 AX, AI 에이전트, 빼도 말이 되면 구호다

2026년 07월 28일

DX, AX, AI 에이전트. 요즘 IT 기사와 회사 발표자료에 한 문단씩 몰려 나오는 말들이다. 그중 AX는 아예 상장사 이름이 됐다. SK C&C가 2025년 5월 13일에 사명 변경을 발표하고, 6월 1일부터 SK AX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AX는 AI 전환(AI Transformation), DX는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의 줄임말이다. 이름만 보면 형제 같은데 나이는 스무 해 넘게 차이가 나고, 주로 쓰이는 지역도 다르다. 그리고 이 글에서 다루는 열여덟 개 중 제일 가벼운 축에 든다.

문제는 이 말들이 한 줄에 세워 놓기 어려운 단어라는 데 있다. 어떤 건 빼면 문장이 아예 성립하지 않고, 어떤 건 빼도 뜻이 그대로다. 같은 자리에 섞여 나오니까 다 비슷한 무게로 들린다.

회의에서 입으로 듣는 말은 따로 정리해 뒀다. RFP, PRD, POC 같은 것들 말이다. 개발 회의 용어를 정리한 글이 그쪽이고, 이 글은 눈으로 보는 말을 다룬다. 보도자료, 발표 슬라이드, 유튜브 섬네일에 뜨는 단어들.

이 단어들을 왜 한 줄로 못 세우나

뒤에 붙어 있는 실체의 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크게 세 층으로 갈린다.

첫째는 기술 층이다. LLM, 토큰, 컨텍스트 윈도우, RAG, 파인튜닝, MCP 같은 말. 문장에서 빼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가리키는 물건이 분명하다.

둘째는 일하는 방식 층이다. AI 에이전트, 에이전틱, 코파일럿, 바이브코딩. 뜻은 있는데 회사마다 경계가 다르다. 같은 단어를 두 회사가 다른 크기로 쓴다.

셋째가 구호 층이다. DX, AX, AI 네이티브. 여기서 쓸 만한 시험이 하나 있다. 그 문장에서 단어를 지워 보는 것이다. “우리는 AX로 제조 현장을 바꾸겠습니다”에서 AX를 지우면 “우리는 제조 현장을 바꾸겠습니다”가 된다. 뜻이 거의 그대로 남는다. 무엇을 무엇으로 바꾸는지는 여전히 안 나온다.

기술 층 단어로 같은 걸 해 보면 차이가 바로 보인다. “사내 문서를 RAG로 붙였습니다”에서 RAG를 지우면 문장이 무너진다. 지울 수 없는 단어에는 정보가 들어 있고, 지워도 되는 단어는 포장에 가깝다.

AI 에이전트는 자동화와 뭐가 다른가

일하는 경로를 누가 정하느냐가 다르다. 사람이 코드로 미리 깔아 둔 길을 따라가면 자동화고, 모델이 그때그때 스스로 길을 고르면 에이전트다.

이 경계를 제일 짧게 적어 둔 문서는 앤트로픽이 2024년 12월에 낸 Building effective agents다. 워크플로는 “LLM과 도구가 미리 정해진 코드 경로를 통해 조율되는 시스템”이고, 에이전트는 “LLM이 자기 과정과 도구 사용을 스스로 지휘하면서 어떻게 일을 끝낼지에 대한 통제권을 쥐는 시스템”이라고 적혀 있다. 문장 하나 차이지만 회의에서는 이 차이가 예산 차이가 된다.

가까운 예가 이 블로그에 있다. 오른쪽 사이드바 돌림판은 최신 글 여덟 개를 받아 와 무작위로 하나 고른다. 본문에 넣어 둔 주사위 위젯은 난수를 굴려 눈을 정한다. 둘 다 정해진 규칙대로만 돈다. 여기서 AI라고 부를 만한 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이걸 회사 소개서에 넣는다면 “AI 기반 콘텐츠 추천”이라고 적힐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적힌 것들을 우리는 매일 본다. 같은 문서가 권하는 자제도 새겨 둘 만하다. 가장 단순한 해법부터 찾고 필요할 때만 복잡도를 올리라고, 그게 “에이전트 시스템을 아예 만들지 않는 것”을 뜻할 수도 있다고 적혀 있다.

에이전틱은 왜 아무 데나 붙나

붙이면 팔리기 때문이다. 이 현상에는 이름까지 붙었다. 가트너가 2025년 6월에 내놓은 전망에서 쓴 말이 에이전트 워싱(agent washing)인데, 기존 챗봇과 자동화 도구에 이름표만 새로 달아 파는 관행을 가리킨다.

같은 발표의 숫자가 더 세다. 에이전틱을 내세우는 업체가 수천 곳인데 실제로 그런 기능을 갖춘 곳은 130곳쯤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그리고 2027년 말까지 에이전틱 AI 프로젝트의 40% 이상이 취소될 것으로 봤다. 비용이 불어나고, 가치가 불분명하고, 위험 통제가 모자란다는 이유였다. 가트너 원문 페이지는 접근이 막혀 있어서 이 수치는 MarTech가 정리한 기사로 확인했다.

그렇다고 에이전트가 헛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진짜와 이름표를 구별하는 질문이 하나 있을 뿐이다. 그게 스스로 판단해서 다음 행동을 고르나, 아니면 우리가 짜 둔 순서를 밟나.

RAG랑 파인튜닝 중에 뭐가 필요한가

거의 대부분은 RAG다. 둘은 목적이 다른데 자주 같은 자리에서 비교된다.

RAG(Retrieval-Augmented Generation, 검색증강생성)는 모델을 그대로 두고 답할 때 참고 자료를 찾아서 같이 넣어 주는 방식이다. 사내 규정집을 붙였다면 대개 이쪽이다. 자료가 바뀌면 자료만 갈아 끼우면 된다.

파인튜닝은 모델 자체를 우리 데이터로 다시 학습시켜 성질을 바꾸는 일이다. 말투나 형식을 고정하고 싶을 때, 또는 특정 분야 표현을 몸에 익히게 할 때 쓴다. 최신 정보를 넣는 용도로 쓰면 비싸고 금방 낡는다.

“우리 회사 자료를 학습시켰다”는 문장을 들으면 어느 쪽인지 한 번 물어보는 게 좋다. 열에 아홉은 학습이 아니라 검색을 붙인 것이다.

MCP는 무엇을 꽂는 자리인가

모델과 바깥 도구를 잇는 규격이다. 공식 문서가 직접 쓴 비유가 제일 알기 쉽다. MCP 문서는 이걸 “AI 애플리케이션을 위한 USB-C 포트처럼 생각하라”고 적어 뒀다.

왜 이 말이 갑자기 어디서나 보이는지는 시간 순서로 보면 납득이 간다. 앤트로픽이 2024년 11월 25일에 공개했고, 1년 남짓 만에 손을 뗐다. 2025년 12월 9일 리눅스 재단 산하 Agentic AI Foundation에 기증했고, 이 재단은 앤트로픽과 블록, 오픈AI가 함께 세웠다. 경쟁사끼리 같은 규격을 들고 재단으로 간 것이다. 규격 싸움이 끝났다는 신호에 가깝다.

비슷한 이름으로 A2A(Agent2Agent)도 돈다. 구글이 2025년 4월에 공개하고 6월에 리눅스 재단에 넘긴 규격이다. MCP가 모델과 도구를 잇는다면 A2A는 에이전트와 에이전트를 잇는다. 층이 다르다.

도구 쪽에서는 이미 팔린다. 기획 도구 하나를 살펴보면서 매니패스트를 정리한 글에 적어 뒀는데, 유료 요금제의 대표 기능이 MCP 연동이었다. 2026년 7월 기준으로 이런 식의 “MCP 지원” 표시는 도구 소개 페이지에서 흔한 항목이 됐다.

긴 대화는 왜 앞을 잊어버리나

컨텍스트 윈도우가 꽉 차서다. 모델은 글자가 아니라 토큰 단위로 읽는데, 한 번에 담을 수 있는 토큰 수가 정해져 있다. 그 창이 차면 앞쪽이 밀려 나간다.

토큰은 단어보다 잘게 쪼갠 조각이라고 보면 된다. 한글은 영어보다 토큰을 더 많이 먹는 편이라 같은 내용이어도 한국어 쪽이 창을 빨리 채운다. 대화가 길어졌을 때 앞에서 정한 규칙을 흘리는 것도 여기서 온다.

할루시네이션은 다른 문제다. 모델이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지 않고 그럴듯한 문장으로 채워 버리는 성질이다. 그래서 이름, 날짜, 숫자, 링크는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 챗GPT를 일상에서 쓰는 법을 정리한 글에서도 같은 말을 했다. 재확인은 선택이 아니라 절차다.

남은 기술 층 단어 셋은 짧게 정리된다. 멀티모달은 글자 말고 이미지, 소리, 영상까지 같이 다룬다는 뜻이다. 온디바이스는 서버에 안 보내고 기기 안에서 돌린다는 뜻이라 속도와 사생활 쪽에서 유리하다. sLLM은 매개변수를 줄인 작은 모델을 가리키는데, 이건 한국에서 특히 굳어진 말이다. TTA 정보통신용어사전에 “경량화 언어 모델”로 올라 있고 영문 표기가 smaller Large Language Model이다. 영어권 문서에서는 보통 SLM(Small Language Model)이라고 쓴다.

AX 뜻은 뭐고 DX와 무슨 차이인가

DX는 일하는 수단을 디지털로 바꾸는 일이고, AX는 판단하는 방식을 AI로 옮기는 일이라고 설명된다. 종이 결재를 전자결재로 바꾸면 DX, 그 결재의 판단 근거를 모델이 만들면 AX라는 식이다.

DX는 신조어가 아니다. 개념의 출처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이 2004년 논문이니 2026년 기준으로 스물두 해 된 말이다. D 다음이 왜 X인지도 여기서 나온다. Transformation의 trans를 라틴어 어근에서 가져와 X로 줄인 관행이다. 일본에서는 경제산업성이 2018년 보고서에서 낡은 시스템을 못 걷어내면 큰 손실이 온다며 “2025년의 벽”이라는 말을 붙였고, 그 뒤로 일본 기업 문서에서 DX가 상용어가 됐다. 벽으로 지목된 해는 이미 지나갔다.

AX는 훨씬 젊고, 쓰이는 지역이 좁다. 영어권 기술 매체에서는 AI transformation을 줄여 AX라고 쓰는 경우를 찾기 어렵다. 반면 한국에서는 정부 사업 이름에까지 들어갔다. 산업통상부의 제조 AI 전환 사업 이름이 M.AX(Manufacturing AI Transformation)이고, 2025년 9월 1,000곳으로 출범한 얼라이언스가 석 달 만에 1,300곳이 됐다. 2026년 예산으로 7,000억 원을 넣는다고 2025년 12월에 발표했다.

그래서 AX를 만났을 때 할 일은 정해져 있다. 그 단어를 빼고 다시 읽는 것이다. 그러고도 문장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안 남으면, 그 발표는 아직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것이다.

한눈에 보는 용어 18개

층을 나눠 적었다. 오른쪽 칸은 그 단어를 문장에서 빼면 어떻게 되는지다.

용어 뜻 한 줄 빼 보면
LLM 기술 거대언어모델. 지금 AI 대부분의 알맹이 문장이 안 됨
sLLM 기술 매개변수를 줄인 작은 모델. 영어권은 SLM 문장이 안 됨
토큰·컨텍스트 윈도우 기술 읽는 조각과 한 번에 담기는 양 문장이 안 됨
할루시네이션 기술 모르는 걸 그럴듯하게 지어냄 문장이 안 됨
멀티모달 기술 글자 말고 이미지·소리·영상까지 문장이 안 됨
RAG 기술 답할 때 자료를 찾아 같이 넣어 줌 문장이 안 됨
파인튜닝 기술 모델 자체를 우리 데이터로 다시 학습 문장이 안 됨
MCP 기술 모델과 바깥 도구를 잇는 규격 문장이 안 됨
A2A 기술 에이전트끼리 일을 넘기는 규격 문장이 안 됨
온디바이스 기술 서버 말고 기기 안에서 돌림 문장이 안 됨
AI 에이전트 방식 경로를 스스로 정해 일을 끝냄 회사마다 크기가 다름
에이전틱 방식 그런 성질을 띤다는 형용사 이름표만인 경우 많음
코파일럿 방식 대신 하지 않고 옆에서 거듦 제품 이름이기도 함
바이브코딩 방식 말로 시켜서 코드를 얻는 방식 완성도 기준이 사람마다
휴먼 인 더 루프 방식 중간에 사람이 확인하고 넘김 어디서 끊는지가 관건
DX 구호 수단을 디지털로 바꾸는 전환 빼도 뜻이 남음
AX 구호 판단을 AI로 옮기는 전환 빼도 뜻이 남음
AI 네이티브 구호 처음부터 AI를 전제로 만들었다는 말 빼도 뜻이 남음

바이브코딩은 층을 정하기가 애매해서 방식 쪽에 뒀다. 2025년 2월에 나온 말인데 그해 콜린스 사전 올해의 단어가 됐다. 사전이 붙인 정의는 “컴퓨터 코드를 쓰기 위해 자연어로 지시하는 인공지능 사용”이다. 아홉 달 만에 사전에 오른 셈이다.

나는 이렇게 읽는다

구호 층 단어를 만나면 지워 보고, 기술 층 단어를 만나면 뜻을 확인한다. 방식 층 단어는 상대에게 되묻는다. 이 세 가지가 다른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만 알아도 발표자료 읽는 속도가 달라진다.

구호가 쓸모없다는 말은 아니다. 이름표는 예산을 움직인다. 7,000억 원짜리 사업에 M.AX라는 이름이 붙었고, 상장사 하나가 사명에 AX를 넣었다. 그 이름 덕분에 실제로 돈과 조직이 움직인다. 다만 그 문장에서 정보를 얻으려 하면 안 된다는 것뿐이다.

이름표와 실물이 다른 경우를 직접 겪은 적도 있다. 폰트 만드는 사이트를 살펴보다가 Metaflop을 정리한 글에서 확인한 건데, 사이트 안내에는 OFL 1.1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 내려받은 폰트 파일 안에는 GPL v3와 OFL이 함께 들어 있었다. 파일을 열어 보기 전까지는 몰랐다. 라벨은 라벨이고 실물은 실물이다.

덧붙이면, 이 단어들 중 일부는 이제 법률 용어이기도 하다. 2026년 1월 22일 시행된 인공지능 기본법에 생성형 인공지능과 고영향 인공지능이 정의된 말로 들어갔다. 유행어가 사전에 오르고 법에 오르는 데 걸리는 시간이 예전 같지 않다.